[컬럼] 암호경제학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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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암호경제학이란 무엇인가?
  • 조중환 기자
  • 승인 2018.09.04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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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승 SK텔레콤 블록체인

사업개발 유닛 팀장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토큰 기반 서비스에 대해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새로운 기획과 도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암호자산의 가치평가 모델에 대한 새로운 방법론이 제시되고, 각국의 암호자산 거래소에 대한 규제 역시 시시각각 변화되고 있으며, 참신한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암호토큰 기반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비즈니스 블록체인(Business Blockchain)'의 저자, 윌리엄 무가야(William Mougayar)는 "블록체인 산업의 출발이 개발자 중심의 기술 혁신에 있었다면, 지금은 예전에 없던 방식으로 기술 적용을 시도하는 창의적 기업가와 금융 전문가 주축의 기업가적 혁신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초 비트코인에서부터 최근 제안되고 있는 새로운 블록체인 프로젝트 기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관통하고 있는 근본적인 작동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바로 ‘암호경제학(Cryptoeconomics)’이다. 암호경제학이란 암호학과 경제학의 결합을 말한다. 블록체인은 컴퓨터 공학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즉, 블록체인을 다른 소프트웨어 기술과 차별화하는 부분이 바로 암호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암호경제학이란 무엇인가?

우선 암호경제학은 암호자산에 대한 경제학, 즉, 암호자산의 가격 변화를 분석하거나 가치를 평가하는 도구는 아니다. 전통적인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에서 다루고 있는 화폐이론, 투자이론, 재정정책이론 등으로 암호자산 시장을 분석하고자 하는 경제학도 아니다. 암호경제학은 오히려 새로운 종류의 플랫폼과 애플리케이션을 기획할 때, 암호학 도구와 경제적 디자인 모델을 활용해 새로운 네트워크의 경제시스템을 설계하는 실용학문이라 할 수 있다.

블록체인 전문기업 L4의 공동설립자 중 한 명인 조쉬 스타크(Josh Stark)에 따르면, 암호경제학이란 경제적 메커니즘을 사용해 분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응용과학이다. 이때 분산 시스템의 주요한 속성들은 재무적 인센티브에 의해 보장받고, 경제적 메커니즘은 암호학에 의해 보장받는다.

블록체인의 혁신성은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익명의 타인과 상호 합의를 통해 신뢰 네트워크를 유지하도록 하는 경제적 인센티브 구조에서 나온다. 비트코인의 경우 네트워크 참여자, 즉 채굴자들이 신뢰 네트워크를 유지하도록 비트코인 보상이라는 강력한 유인책이 제공되고 있고, 네트워크를 공격하거나 조작하고자 할 경우 막대한 경제적 비용이 발생하도록 되어 있어서 네트워크의 안전성은 지속될 수 있다.

블록체인은 이런 암호경제학의 산물이다. '트러스트 머신(Trust Machine)'이 블록체인의 가치 지향점이라면, '인센티브 머신(Incentive Machine)'은 블록체인의 작동 메커니즘이다. 네트워크 참여자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은 결국 인센티브와 패널티 구조를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때 적용되는 경제학의 핵심은 전략적 행동과 의사결정,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적 인센티브에 대한 이론인 게임이론(Game Theory)과 메커니즘 디자인(Mechanism Design), 그리고 마켓 디자인(Market Design)이다.

먼저 게임이론에 대해 알아보자. 이 때 게임은 놀이, 오락, 경기 등을 의미한다.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게임의 공통점은 첫째, 참여자들이 지켜야 하는 게임의 규칙이 있다는 것이고, 둘째, 참여자의 전략이 중요하며 전략적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 전략에 대한 예측이 전제된다는 점이다. 셋째, 최종 게임 결과에 따른 보수(Payoff)가 있다는 것이고, 넷째, 게임의 결과는 참여자들의 전략적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즉, 게임이론이란 게임의 참여자들이 다른 참여자의 전략적 행동을 예측하고 그 예측을 기반으로 자신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 구조적 틀을 제시하는 이론이다. 이 때 전략적 행동은 전략적 갈등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이 상대의 행동과 어떤 관련이 있을지, 상대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가능한 옵션에 대한 이해와 추정을 바탕으로 한다. 이 때 전략적 갈등이란 전쟁이라는 위협 또는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의 위협을 말한다. 전략적 갈등은 위협과 약속을 활용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는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게임이론 관점에서 보자면, 비트코인 채굴자(Miner)들 간의 경쟁, 스팀잇(Steemit)의 증인(Witness)들 간의 경쟁, 이오스(EOS)의 BP(Block Producer)들 간 경쟁과 같은 블록체인 네트워크 참여는 게임의 규칙에 따라 이뤄지며 참여자들의 전략적 행동으로 구성된다.

이렇듯 게임이론에서는 주어진 상황을 하나의 ‘게임’으로 보고 각 참여자들이 최선의 전략을 분석하고자 하는 데 반해, ‘메커니즘 디자인’은 게임의 룰 자체를 디자인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메커니즘 디자인을 ‘리버스 게임이론(Reverse Game Theory)’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메커니즘 디자인은 미리 원하는 결과를 설정하고, 각 참여자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선의 행동을 결정한다고 전제할 때, 미리 설정한 결과를 산출할 수 있는 게임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메커니즘 디자인은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하거나 참여자의 기대보수를 극대화하기 위해 게임을 애초에 어떻게 구성하는 것이 좋은가라는 물음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정부가 특정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때 아무리 좋은 목적에서 출발했더라도 당초 의도했던 정책 효과가 달성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사람들이 이타심이 아닌 각자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참여자의 선한 의지 또는 이타심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최적의 제도는 무엇인지, 어떻게 이 제도를 설계할 것인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메커니즘 디자인은 또한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다룬다. 무엇보다도 공평한 분배가 핵심이다. 예를 들어 케이크를 공평하게 나누는 문제를 생각해보자. 두 사람에게 공평하게 케이크를 나누기 위한 방법은 한 사람(A)은 자르게 하고, 다른 사람(B)은 먼저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A는 어느 조각을 갖게 되더라도 자신이 분할했기 때문에 공평하다고 생각하고, B는 자신이 먼저 선택했기 때문에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분할 선택법을 N명으로 확장해서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바로 메커니즘 디자인의 한 방법이다.

메커니즘 디자인이 주로 이론적인 모델 수립에 초점을 두고 있는 데에 반해, ‘마켓 디자인(Market Design)’은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케이스 연구에 집중한다. 마켓 디자인은 한편으로 과학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이다. 마켓 디자인은 게임이론과 메커니즘 디자인의 형식적 툴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과학적 작업이지만, 실제 디자인을 위해서는 해당 영역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넘어선 의사결정을 요구한다는 점에서는 예술적 작업과 같다. 마켓 디자인은 누가 무엇을 갖게 되는지가 어떻게 결정되는 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경제학 영역임과 동시에 인간 행동에 대한 탐구이므로 행동심리학과 행동경제학의 이론적 모델까지 활용해야 한다.

전통적인 접근에서는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의 균형 가격(Equilibrium price)을 찾는 것이 중요했지만, 균형 가격만으로 설명하기에 부족한 시장도 있다. 가격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에서 수요자와 공급자 매칭은 다른 접근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 이외에도 오름 입찰(Ascending Bid), 봉인 입찰(Sealed Bid), 차점 가격 경매(Second-Price Auction) 등 다양한 구조의 경매 모델로 수요자와 공급자 간 거래를 지원하는 것도 마켓 디자인의 구체적인 사례다.

마켓 디자인은 정적인 개념이 아니다. 마켓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다시 디자인하면 된다. 아예 새로운 마켓으로 설계할 수도 있다. 마켓 디자인은 기존 관습과는 다른 접근으로서 점진적 변화를 통해 발전한다.

그렇다면 이런 경제 디자인(Economic Design)이 어떻게 암호경제학에 활용될 것인가? 무엇보다도 컨센서스 프로토콜은 암호경제학적 접근으로 설계될 수 있다. 하나의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서로 신뢰할 수 없는 다수의 참여자 간에 특정한 상태에 대해 어떻게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이더리움의 컨센서스 프로토콜이 작업증명(POW) 방식에서 캐스퍼(Casper)라고 불리는 지분증명(POS) 방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은 인센티브와 패널티 구조에 대한 설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새로운 캐스퍼의 철학은 사실상 암호경제학에 기반한다. 두 번째로 레이어 2 스케일링 솔루션 영역에도 암호경제학이 적용된다. 기존 퍼블릭 블록체인의 확장성을 개선하고자 하는 레이어 2 스케일링 솔루션에 적용되는 경제적 메커니즘은 일종의 상호작용 게임과 같다. 이 외에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 영역에서도 쓰일 수 있고, ICO 과정에서도 암호경제학의 여러 접근들이 시도될 수 있다. 토큰 세일이 내림 입찰(Descending Bid) 방식으로 진행된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도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화 플랫폼에서는 기존 권위(Authority) 지향적 모델이 거버넌스(Governance) 모델로 대체된다. 중앙 권력에 의해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인센티브 구조에 의해 질서가 유지된다. 중앙 권력 없이 운영되는 조직과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은 수많은 참여자들이 결과적으로는 전체 네트워크의 이익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탈중앙화 네트워크의 지속적인 성장은 컴퓨터 공학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암호학과 경제학적 디자인 모델이 결합될 때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암호경제학은 융합과학 성격을 가진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다. 경제학에서 다루고 있는 경제적 디자인 모델들이 암호학 도구들과 결함됨으로써 새로운 블록체인 세계를 열어나갈 것이다. 암호경제학은 이제 시작이다.

* 글: 김종승 SK텔레콤 블록체인사업개발 유닛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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